세 작가의 작은 소통연대의 기록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Where are we going?>>
2023. 06. 16 - 2023. 7. 1
세 작가의 작은 소통연대의 기록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전시<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를 함께 준비한 세 작가, 김은설, 허호, 김령문은 지난 겨울과 봄, 여름이 시작되는 지금까지 서로의 작업실을 오고 가면서 각자가 지닌 불확신과 혼란, 확신과 의지 같은 것들을 확인하고 공유하면서 때로는 느슨하고 부드럽게 때로는 뜨겁고 격렬하게 마주하였다. 마주하는 형태와 특성에 상관없이 작가들은 때가 되면 작업실에 모였고, 그 자리에서 확인한 건 더 이상 새롭지만은 않은 사실인 “두려움에 잠식당한 건 나 혼자가 아니고”, “미래의 불안은 미래로 나아갈 때 그 두려움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삶을 동시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작가들은 항상 지극히 다양한 주제의 고민들과 마주하고 있다. 개인과 가족, 공동체, 사회와 정치, 예술 영역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 관계 안에서의 문제,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의문, 다양한 현상, 감정, 일원화시킬 수 없는 가치들에 대한 치열한 고민, 예술적 표현에 대한 문제, 예측 불가능한 결과들에 대한 두려움, 외부의 시선과 평가에 대한 반응 등 다양한 지점에 대한 고민과 숙고의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방대한 양의 파편화된 생각들은 종종 우리를 불안이라는 감정에 잠식시킨다.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는 삶을 멈추는 게 때로는 더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남들처럼 돈을 벌고, 삶의 순간순간 다름을 직시해야하는 고생스러움을 감내해야 할 필요 없이,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행복을 느끼는 게 얼마나 달콤한 삶일까 생각한다.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세 작가의 연대는 이런 고민에 완전한 해결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그림을 그리고(작업을 하고) 있고”, “내가 만들어 낸 이미지들의 날개 돋침에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서로를 믿고 의지하게 하였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고, 완성되지 않은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자기 검열을 최소화하면서,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우리가 걸어갔던 현재의 파편들을 흔적처럼 풀어놓았다.
추신**
따뜻한 공감과 배려, 상호적 신뢰가 바탕이 되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어떠한 힘을 가지게 되는지 세 명의 작가는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서로에 대한 경청과 진심 어린 생각의 나눔, 공감과 신뢰, 그리고 격려와 위로가 함께 하였기에 매번의 만남을 통해 얻는 에너지는 인상적일 정도로 너무 강렬했다. 우리의 시간 속엔 진지함뿐만 아니라 함께 나누었던 음식, 커피와 차, 소소한 주제들에 대한 대화와 웃음, 공간의 느슨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주던 여유로움, 고양이와 강아지, 창을 통해 불어오던 기분 좋은 바람과 햇살도 함께 있었다.
참여 작가 및 작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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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호
신체가 닿는 순간의 친밀함은 남아있지만, 상대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누구라도 상관없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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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설
누구나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정체성 일부가 거대해 보여서 다른 정체성들이 보이지 않는다. 외부에서도 커다란 덩어리를 주로 본다. 거대한 정체성에 맞춰 부응하고자 몰입해보았지만 일부만 맞출수록 다른 정체성들이 잠식되고 잊혀지고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공허하게 느꼈다. 이 거대한 덩어리가 나의 정체성 중 일부인데도 온전히 내 것이라고 여기기엔 어려웠다.
작은 덩어리들도 나의 일부이지만 이상하게 두려웠고 자신 없었다. 커다란 정체성에 비해 다른 정체성들이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연약해서 혼란스러웠다.
외부에서 무관심하고 보이지 않아서 몰라서 외면 받았던 이 작은 덩어리들은 형태가 엉키고 뭉그러지고 흩어져도 나는 붙잡고 마음 속에 늘 담아뒀다. 내가 너무 나 ‘자신’이 아닌 ‘외부’에게 신경 쓴 것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잊혀진 것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외부를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제서야 바라본 나의 것이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알알이 흩어져 있던 덩어리들을 모아 뭉칠 수 있고, 흩어져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혹은 굳이 뭉치거나 건들이지 않아도 개별적인 존재로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져보고 솔직하게 보여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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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문
계절의 춥고 더움과 시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틈틈이 오래도록 작업을 한다는 건 나의 오래된 희망이다. 그러한 방식이 가능해지려면 가장 먼저 일상의 루틴을 뒷받침해 줄 체력과 마음을 비우고 정화하는 시간과 활동이 수반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오늘을 불태워 내일을 없애는, 최상의 결과물만을 목표로 삼는 고통스러운 창작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오늘과 내일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나와 주변을 생각하고 즐길 수 있는 창작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풀리지 않는 생각에 묶여서 행동하지 않을 때는 몸을 움직였다. 밖으로 나가 산책하면서 걷고 멈추고 앉았다 일어섰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바람을 가르듯 가위로 오리고, 냄새를 맡는듯 종이를 붙였다. 같은 길을 걷는듯 반복적으로 그리는 단순한 행동들은 복잡하게 놓여있던 생각들을 명료하게 해 주었다.
견고한 완결을 위해 고급 재료를 선택했던 한계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스티커, pvc용지, 어린이용 사인펜과 색연필, 반짝이풀, 매직, 장난감, 촛불, 무지개떡 등을 사용하였다. 작가가 완벽하게 컨트롤하려고 시도하는 미학적 판단을 최소화하고자 장난감을 이용하여 우연의 요소를 취하였고, 녹아내리는 촛불 드로잉을 통해 시각적 이미지에 덧씌워지는 견고하고 완벽한 절대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하였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작가: 허 호, 김은설, 김령문
기획: 김령문
서문: 김령문
촬영: 백승현
포스터디자인: 김령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