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림워커스 특별전 «젖과 꿀: The end of the world»
2023.03.24 - 04.14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한다
낙원(paradise)의 개념은 컨텍스트와 문화에 따라 수 많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낙원은 완벽한 행복감, 평화로움의 장소와 연관되어 있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와 같은 몇몇 종교적 전통에서, 낙원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 가는 영원한 행복의 장소로 묘사된다. 또 다른 맥락에서, 낙원은 아름답고 목가적인 열대 섬, 평화로운 시골, 또는 사막의 고요한 오아시스와 같은 지구상의 완벽한 장소를 지칭할 수 있다. 그리고 만족감, 행복감 또는 성취감과 같은 마음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은유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전시는 낙원이 무엇인지 하나로 정의하기 보다는 수 많은 낙원의 형태와 존재 상태를 ‘바라보는 태도’를 시각적으로 연출하는 데에 방점이 있다. 그것을 위해 이 전시는 시점의 다양함을 제공한다. 시점의 다양성은 갤러리 외부의 유리벽에서부터 드러난다. 갤러리 외부의 유리벽을 멀리서 무심코 지나쳤을 때는 아무 그림도 걸리지 않은 갤러리 내부의 하얀 벽 같아 보인다. 하지만 유리벽 가까이로 다가갔을 때 그것은 착시였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유리벽에 몇 개의 작은 구멍들이 나있다는 것도.
이 유리벽 뒤 편으로는 낙원에 대한 다섯 명의 시각예술가들의 시점과 더불어 기계적 시점 즉, AI가 생성한 5000여개의 수 많은 낙원의 파편적 이미지들이 무한 루프되고 있다. 그것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벽에 몸을 밀착해야만 한다. 벽 너머를 보기 위해서는 벽에, 더 가까이는 벽에 있는 구멍에 다가가야 한다. 여기서 구멍은 안과 밖의 구분과 경계가 허물어지고 뒤섞이는 하나의 교차점으로 작동한다. 구멍은 벽의 미래고, 벽은 구멍의 과거다. 이 전시에서 벽의 구멍은 단절이며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확장하는 통로다.
다시 말해서 이 전시는 벽과 벽의 구멍이라는 시각적 알레고리들로 과거-미래, 안-밖, 개방-폐쇄와 같은 상호 모순적 이중성의 관계항들이 이뤄내는 무한한 교차운동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글림워커스가 낙원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들에게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으므로, 각자의 낙원의 모양이 존재한다.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인 슐레겔의 시 「나비 Der Schmetterling」(1802) 을 인용하며, 글림워커스의 낙원찾기세트를 위한 또 다른 막(membrane)과 벽(wall)인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어찌 춤을 추지 않을까./ 전혀 힘이 들지 않으니,/ 매혹적인 색들이/ 이곳 들판에서 반짝인다./ 형형색색의 내 날개는/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작은 꽃 하나 빠짐없이/ 더욱 달콤하게 숨을 쉰다./ 나는 꽃을 맛보고,/ 너흰 그것을 지킬 수 없지.// 이 기쁨 얼마나 큰 것인가,/ 늦었든 이르든,/ 분별없이 비행하는 것./ 계곡과 언덕 위로./ 밤이 속삭여오면,/ 너흰 발개지는 구름을 볼 테지./ 공기가 금빛을 띠면,/ 초원은 한층 푸르러진다./ 나는 꽃을 맛보고,/ 너흰 그것을 지킬 수 없지
Wie soll ich nicht tanzen,/ Es macht keine Mühe,/ Und reizende Farben/ Schimmern hier im Grünen./ Immer schöner glänzen/ Meine bunten Flügel,/ Immer süßer hauchen/ Alle kleinen Blüten./ Ich nasche die Blüten,/ Ihr könnt sie nicht hüten.// Wie groß ist die Freude,/ Sei ́s spät oder frühe,/ Leichtsinnig zu schweben/ Über Tal und Hügel./ Wenn der Abend säuselt,/ Seht ihr Wolken glühen;/ Wenn die Lüfte golden,/ Scheint die Wiese grüner./ Ich nasche die Blüten,/ Ihr könnt sie nicht hüten.”
이 시에서 나비는 ‘분별없이’ 비행해서 기쁘다. 역설적이게도 나비는 ‘분별없이’ 비행했기에 매혹적인 색으로 반짝이는 들판과, 아름다운 꽃의 맛, 계곡과 언덕, 구름과 공기의 빛깔을 ‘분별할 수 있었다’. ‘분별없음’이 ‘분별’을 발견하게 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글림워커스 특별전 «젖과 꿀_the end of the world»이 제안하는 벽과 구멍을 통해 새로운 무한함을 발견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함께 만든 사람들
작가: 글림워커스
기획: 이채원
글: 이채원
촬영: 홍철기
포스터디자인: 노승표